시시콜콜 나를 위한 여행, 내게로路_원더러스트

2015. 1. 7. 17:05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청소년


본 프로그램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 5일 수업제 도입에 따른 문화예술교육 정책의 일환으로 

2012년부터 추진되는 ‘2014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프로그램입니다.


청소년이 지역의 문화예술기관에서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을 체험 할 수 있도록, 

한국영화박물관(한국영상자료원산하)에서는 <시시콜콜 영화박물관 점령기> 프로그램의 토요문화학교를 운영합니다.



시시콜콜 나를 위한 여행, 내게로


한해동안 한국영화박물관에서 만났던 <시시콜콜 영화박물관 점령기>가 기차로 떠나는 예술 여행을

정읍과 고창일대로 다녀왔습니다.

아티스트 4명, 한국영상자료원 직원 3명, 학생 28명, 진행을 맡은 놀다 7명,

총 42명이 동행한 시시콜콜 나를 위한 여행, 내게로

자유롭게! 무질서하게! 느슨하게! '여행'의 과정에서 느끼는 다채로운 감성을

사진, 미술, 퍼포먼스, 음악으로 풀어내며

왁자지껄 대책없이 뒹굴었던 2박 3일의 이야기를 낱낱이 들려드리겠습니다.



원더러스트

; 나의 조각을 모으는 여행

2014.10.17-19




우리는 그림모둠이라 불리기도 했지만, 미술 모둠이라 답하기도 했고,

어제는 퍼포먼스를 했고, 오늘은 노래를 부르고, 내일은 사진도 찍어볼 요량인데,

뭐 항상 내 손에는 드로잉북을 담은 커다랑 망태기가 들려져 있다.


자고로 방랑자는 계획대로 하는 법이 없다는데

생각보다 계획도 하고싶은 것도 많은게 조금 아이러니..랄까.

그래도 초보 방랑자들의 시작 치고는 제법 용감했다.



대장 혜민,

꽃소녀 지영, 세연, 지현, 랑, 지나, 윤진,

청일점 시영쌤과 초보찍사 지은.


여행이야기.


*

*

*




자라나는 꽃 소녀들의 흑역사를 남길 수 없으므로

기차타고 이동중인 시간은 건너뛰고

시작은 정읍역. 지현이. 여행 내내 단독샷이 제일 많은 그녀.

니가 사진 좀 찍힐 줄 아는구나.



우리는 제일먼저 점심식사를 마치고 잽싸게 나왔으나

결국 모든 다른 모둠이 떠나갈 때까지 식당앞에 죽치고 있었다.



그거슨! 3일 내내 사용할 우리의 장비를 만들기 위해서이다.

우린 여행하며 눈에띄는 많은 것들은 수집할거거든.

그래서 각자 수집한 물건을 담을 거적데..아니 망태기를 가지고 다니기로 했다.



쫜!



쫘좐!!


개성을 살린 망태기를 하나씩 준비한 원더러스트!

이 얼마나 위풍당당한지!! 정읍의 패션리더!!



정읍의 수많은 지역민들이 우리의 패션센스에

감탄하며 눈을 뗄줄 몰라했었다지.. 아니 그렇게 생각하고 싶...



우리 지나, 처음엔 그리 부끄러워하더니,

저 당당한 워킹을 보라!! 역시 익숙해진다는 건 무서운거야...


쨋든 그렇게 당당히 워킹을 하다가도

조그만 타이어를 발견해 주워담고, 상점에서 노랗고 하얀 귀여운 새들을 만나고,

시장에 들러 싱싱한 과일보다는 고기고기에 더 시선을 집중하며

휘젓고 다니다 쉬러 들어간 곳은



시장을 빠져나와 한적한 골목에서 만난

'정읍 노휴재'



뉘엿뉘엿 한참 볕이 진해질때쯤

운치있는 오래된 한옥 마루에서

하늘을 보니 잠깐 시간이 멈추어줬음 했다.



어머! 이건 찍어야해!

세연이가 챙겨온 셀카봉은 3일 내내 대활약을 했더랬지.


간식을 사러나간 사이 한 할아버지께서 친구들에게 이곳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셨다는데

나중에 친구들이 신나게 전해줬던 말은


"비석이%*&)&^#$ 동학농민운동이...$*()(*$#@$"

밖에 기억이 안나서 찾아봤다.


[정읍노휴재]

  서기 1905년 9월 29일 향로 이계풍(李啓豊) 외 12명의 부로들이 우국충정에서 뜻한바 있어 이곳에 노휴재를 창건하고 사정 군자정과 공용했다. 이로부터 14년이 지나서 서기 1919년에 구미동 필야정으로 분리해 나가고 양사재로 호칭했다. 그리고 서기 1922년에 양사재를 중건하고 양로재로 개칭했다 각설 망국의 한에 사무쳐있는 재원들은 일찍이 3.1만세 운동에 참가하여 그 가운데 주모자였던 이익겸(李益謙), 박환규(朴桓奎), 유만규(柳滿奎) 공이 옥고를 치루기도 했다. 이로 말미암아 노휴재는 왜정의 감시대상이 되어 운영이 침체해지자 친목회를 결성하여 간신히 운영해 오다가 서기 1945년 일본의 패망으로 민족의 광복을 맞아 노휴재는 활기를 찾게 되었다. 그리하여 다음해 을유노인회를 결성하여 건국사업에도 협력하고 지역사회에도 참여키로 하여 당시 존폐위기에 처해있는 정읍여자 중학교 교사 신축에 금 500만원을 모금하여 난경을 타개하기도 했다. 그리고 서기 1948년에 이르러 이병규(李秉奎), 박석규(朴碩奎) 양인의 사재 희사와 지방유지들의 성원으로 재사를 일신중수하고 정읍 노휴재라 개칭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서기 2005년 10월 31일에는 정읍노휴재 창건 백주년에 즈음하여 과거를 정리하고 미래의 발전을 위하여 정읍노휴재 백년사를 간행하고 이에 기념비도 건립하였다.


▲ 정읍노휴재기념비와 애국지사공적비

정읍노휴재 기념비는 네 개이며, 맨 우측에 있는 것은 애국지사 공적비입니다.
2008년 8월 14일에 광복 60년을 맞아 3.1운동을 주도했던 정읍 3인의 애국지사 공적비를 세웠습니다.


음. 나도 할아버지께 직접 들었다면 더 재미있었을텐데..

아쉬움은 남았지만.

우리는 그렇게 노휴재에서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만나고,

조금은 앙칼진 강아지도 만나고,

간식도 노나먹으며 쉬다가

첫날의 종착지 고창으로 가기로 했다.



사실. 우리가 아직 그렇게. 많이. 친하지는 않아.

1기는 지영이 혼자뿐이고, 2,3기도 다 섞여있고, 더구나 쌤들은 오늘 처음봤거든.

시내버스에 올라 꽃소녀들의 하루종일 이어진 장난에 지친 시영쌤이 잠시 딥슬립에 빠져든 사이

뒤늦게 서로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오늘의 그리고 남은 여행을 어떻게 즐길 수 있을까 수다를 떨어댔다.


해는 점점 더 뉘엿뉘엿

버스를 한번 더 갈아타고 퍼포먼스 모둠을 만나

함께 동호로 향하는 사이. 아주 캄캄하게 하루가 저물었다.


하루의 피로를 다 날려줄 것 같은 하늘의 별과,

방전된 체력을 회복시켜 주는 맛난 저녁식사,

드라마에서 나올 것 같은 복층의 예쁜 숙소에서 첫날밤을 맞았다.



평소와는 조금 달랐던 오늘 하루를 기억하려고

조용히 드로잉북에 오늘 하루를 가득 채워 담았다.



음악을 틀어놓고 흥얼흥얼거리다가 기획단에 있는 기타를 접수해

노래판을 벌리며 하루를 마무리 한다.

아깝게. 시간이. 빨리도. 흘러간다.



*

*

*



날이 밝았다.



잠시 기타도 뚱땅거려보고,

늦은밤 도착해서 미처 둘러보지 못했던 숙소 주변을 둘러보고,

어제보단 카메라가 덜 부담스러운지 여기서도 저기서도 쾅쾅 사진을 박았다.

그렇게 여유진 시간을 보내나 했더니 바로 앞이 바다라고.



"오늘은 종일 바다를 보러 가자."

-




바다.

이쪽도 저쪽도 온통


바라던 바다.



어젯밤엔 너무 늦게 도착해서 바다를 보지 못했구나

일몰을 보지 못한 아쉬움,

좀 더 지켜보지 못한 밤하들에 대한 아쉬움이

탁트인 바다와 맑은 하늘을 보니 더해졌다.



아쉬움은 아쉬움대로.

오늘은 바다를 하루종일 끼고 있을거니까

"일단 본업에 충실해볼까?"

하고, 둘러보니

보물섬? 보물밭?이 따로 없었다.



슬리퍼, 술병, 전구, 캔, 부표 등등

해변으로 잔뜩 쓸려와 있는 쓰레기들 사이사이에서

왠지 마음이 가는 것들을 집어들어 망태기에 담았다.


윤진이가 카메라에 제대로 얼굴을 비추어준 건 이때가 처음이었을까?



시영쌤은 하다못해 바다모래를 담으며

퍼포먼스를 연구하고 계심.

그리고 집념으로, 저녁시간에 퍼포먼스를 성공적(?)으로 해내시기도 했지!



우리는 그렇게 이 바다를 슬렁슬렁

위아래로 휘젓고 다녔다.


그리고.

결국

만나고야 말았어.



고 to the 래.



사실 그 전에 부패된 고래의 사체를 한번 본 뒤라

이렇게 멀쩡한 고래를 보니 진짠가 가짠가 의구심에 싸였고,

장난감인지 알고 나쁜짓....ㅠㅠㅠㅠㅠㅠㅠㅠ을 조금 해버렸으나,

진짜 고래라는 걸 나중에 알고는 우리는 충격에 휩싸였다.




그러다 혜맨쌤의 아이디어로

이 아이가 좋은 곳에 갈 수 있도록

묻어주기로 했지.



저멀리 지나가던 '왕들의 버스'를 붙잡아

추모곡도 부탁했다.

그렇게 그 자리에서 멋진 버스킹이 시작되었다.



안녕.

작은 고래야.

좋은 곳에 가서 행복해지렴.

나쁜짓 해서 미안해.

절대 일부러 그런게 아니야.

용서해줘.ㅠㅠ



우리는 공연을 즐기고, 잠시 쉬다

다시 길을 떠났다.



해변을 따라 계속 걸어 내려가다

깊숙이 물이 들어온 곳에서

신발과 양말을 벗어드니


왠지 쫌! 더! 자유로운 영혼이 된듯한 느낌이

갑자기 막! 막! 들었다.



제일먼저 드러누은 랑랑과 윤진이.


결국 꽃소녀들은 구름한점 없는 하늘 아래

뜨거운 볕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벌렁벌렁 드러눕기 시작했다.


태양을 피하는 건 평균나이 31세

기미가 올라올까 걱정인 쌤들뿐.;;;



누군가는 배낭을 베고 스리슬쩍 낮잠에 빠져들었고,

또 누구는 잔잔한 음악을 켜 놓았다.


문득 세연이가 말했다.

'지난 이집트 여행에서 기억에 남았던 순간과 비슷'하다고.

구름한 점 없는 하늘, 눈부신 햇빛, 간지러운 공기,

옆에 잠든 친구의 숨소리가 들릴듯한 조용함, 모래바닥에서 느껴지는 나른함.

나도 지난여행에서의 비슷한 기억을 떠올리고 있었기에

이번여행도 '지금 이순간이 가장 많이 그립겠구나' 싶었다.



쨌든 한참을 이렇게 누워 낮잠을 자다

고대로 앉아 점심도 먹고, 음악도 듣고,

해변에 차를 끌고 들어와 뻘에 빠져서 고생하는 청년들을 구경하다가

조금 지루해질때쯤.


다시 해변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멀리서 보면 그냥 쭉 펼쳐진 해변인데

걸음을 옮겨 조금씩 나아갈때마다

작은 곳에서부터 조금은 다른 풍경이 눈에 띄기도 한다.


돌멩이인줄 알았는데 뻘이 뭉쳐져있는 거라든지

바다생물을 잡기위한 '발'로 추정되는 물건이라든지

각종 추리를 가능하게 하는 바다.



발이 푹푹 빠지는 해변을 짐이가득한 망태기를 끌며 걷다보니

하나 둘 체력이 딸리기 시작한다.


"우리 초반에 물건을 너무 많이 주운거 같아."


그러면서도 이미 주워담은 것들을 버리기엔 아까워

끝까지 가져가야겠기에 걷기에 조금은 편할까 싶어

바로 옆 해변도로로 올라가 걷기 시작했다.



히치하이킹하는 사진모둠과

혼자 트래킹중인 것 같은 반장님도 만나고

조금 재미지다가도

아스팔트바닥에 끌려 튿어지는 망태기를 요래저래 부여잡고

점점 지쳐오니 말없이 터벅터벅 걷고 또 걸었다.



아. 되다..

'우리 왜 이렇게 힘들게 걷고 있는 거지?'

의문이 생길때 쯤, 그 답을 미처 생각해보기도 전에.

풍경이 달라지고,

목적지가 가까워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잠시 파출소의 화장실을 빌리고 쉬어가는 한때.

꽃소녀들의 얼굴에 미소가 돌아왔다.



제일 먼저 숙소에 도착한 원더러스트.

잠시 쉬는둥 마는둥하고는

드디어 이틀간 모은 망태기를 풀어놓았다.



다양한 크기, 색깔, 모양의 부표와 조개껍데기,

슬리퍼, 페트병, 타이어, 전구, 삽, 병뚜껑 등등


이런걸 이틀 내내 짊어지고 다녔다니.

꽃소녀들이 기특해졌다.



그리곤, 누가 어떻게 지시할 것도 없이

마구마구 작업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너희들 약간 흥분했던 거 알지?


'이렇게 저렇게해서 무엇을 만들자!'는 얘기도 없이

그저 하고 싶은대로 하기 시작했다.



처음 주웠을땐, 까망고 하얀 물건들이 많았는데

락카를 얻어왔더니 알록달록 예쁜 아이들로 변신!!

어떤 작품이 탄생할지.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가 온. 밤.


원더러스트만의 시간이 아닌.

다른 친구들과 함께하는 파티.


모둠별로 이틀간 보낸 시간을

공유하는 자리.



지현이가 다른친구들을 이끌고

원더러스트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에 대한 설명을 하기 시작했고,



지영이가 작품은 세세한 부분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지나가 계속 들고다닌 드로잉북에 담은 이야기를 모두에게 들려줬다.


놀랐던 건.

좀처럼 목소리를 내지 않는 윤진이의 가장 높은 데시벨의 한마디로

시영쌤이 벼르고 있던 퍼포먼스까지 이어줬다는 것.


안타까운 건. 나. 분명히 들었는데.

이거 내용이. 기억이 안난다는 거다.


"시시콜콜이$#*(*(^%$@$%

여행이(_**%@%^**%%^#"


뭐 이런거였는데 말이지...ㅠㅠ




쨌든. 이렇게 파티는 끝나고, 밤도 깊어갔다.


어제 보지못한 별을 보겠다고, 돗자리를 가지고 바닷가로 나가서

수없이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며 꺅꺅 소리를 질러대고 소원도 빌었다.

어제만큼 밝게 보이진 않았지만, 아쉬운 건 또 아쉬운대로.

또한번 맑은날에 고창에 오고싶게 만드는 마음이 생겼다.


아쉬움이 가득가득 차고 넘쳐서

쉽게 잠들 수 없던 밤이 그렇게 지나갔다.



*

*

*


마지막 날


끝나가는 여행이 아쉬워

잠을 이루지 못한 꽃소녀들과

빨개진 눈으로 좀비처럼 기어나와

마지막 추억을 남겼다.



어제는 결국 작업중에 날이 저물어

제대로 카메라에 담지 못했던 원더러스트의 작품.


우리의 작업에 관심을 가져주시던

호쾌한 숙소 주인아저씨께서

작품을 이곳에 그대로 전시해 주겠다고 하시니

꽃소녀들도 한시름 놓고 숙소를 떠날 수 있었다.



다시 돌아 올 바다를 기억하며

안녕.

하고.



끝난 듯, 끝나지 않은, 끝날것 같은 여행 길에서

정읍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이 마음 고스란히 작은 엽서를 적기로 한다.


일상으로 돌아간 몇일 후에 직접 받아보며 회상할 수도있고,

또는 보고싶은 누군가에게 함께하고 싶은 마음을 전할수도 있다.

조용히 앉아 하얀 엽서 앞뒷면을 꽉꽉 채워 천천히 적어내려갔다.

엽서는 후에 혜민쌤이 대청도라는 섬에서 모두에게 보내주었다.


다들. 받았지?





구시포에서 버스를 타고

정읍으로 돌아와 점심은 중국집.

모두들 반반으로

짬짜면, 복짬면. 배를 채우고



원더러스트의 마지막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정읍역. 바닥에서.

이래도되나 싶어 처음엔 쭈뼛쭈볏



그러다 다른모둠 친구들이 다가오기에

하나 둘 바닥에 눞혀

정읍역 앞 광장 한 귀퉁이를 다 채웠다.



마지막 미션까지 모두 완료!!


마지막 날은

하루 종일 헤어짐의 준비를 했던 것 같다.

정작 헤어지는 시간은 초저녁시간이었는데.


아침부터 그저 막 안타깝고, 아쉽고,

조금만 시간이 더 있었음 하고 말이지.


그렇게 종일 10분도 1분도 소중하게 꼭꼭 담아

기억하고 간직하고. 안녕. 안녕.


하늘 맑은 날, 청명한 공기, 예쁜바다를 볼 때면

항상 원더러스트를 기억하게 될 거야.



시시콜콜 나를위한 여행 내게로(路)_ 그림모둠 from nolda on Vimeo.